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스크바 대공국 (문단 편집) === 흑사병 이후, [[드미트리 돈스코이]]: 정교회와의 협력, 일시적인 독립과 재복속 === 하지만 잘나가던 모스크바 대공국도 1350년 [[흑사병]]의 창궐로 기세가 한 풀 꺾이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공작가가 직격탄을 맞는 바람에 타격이 더 컸다. 결국 9세의 나이로 드미트리 이바노비치가 모스크바 공작위를 계승하게 되었는데, 이를 계기로 대공위도 수즈달 공작에게 빼앗겼고, 리투아니아와 무슬림 유목민 등에 둘러싸여 자칫 잘못하면 멍석말이를 당할 위기에 처하였다. 이에 드미트리는 [[정교회|러시아 정교회]]와 적극 협력하면서 세력을 안정화시켰고, 킵차크 칸국에 대항하여 러시아의 독립을 꾀하기도 하였다. 이 무렵 드미트리는 러시아 정교회의 공권력을 자청하고 있었는데,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적극적으로 러시아 제후들을 설득하였고 그 결과 결성된 러시아 제후 연합군이 쿨리코보 전투에서 권신 마마이가 이끄는 킵차크 칸국을 [[관광]]태우는 쾌거를 얻었다. 그 결과 러시아는 칸에게 종속된 관계를 청산할 수 있었고 [[드미트리 돈스코이|드미트리는 돈스코이]]란 [[별명]]을 얻으며 러시아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다. 하지만 1382년 [[토크타미쉬|토흐타미쉬 칸]]이 병력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침공하여 [[역관광]]당하는 바람에 다시 칸에게 예속된 위치로 돌아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